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크라이나-리투아니아 관계 (문단 편집) === 20세기 === 20세기 초까지 두 지역 모두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. 그러던 중 [[적백내전]]이 터지면서 리투아니아는 [[리투아니아 1공화국]]으로 독립을 이룩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독립에 실패하고 그대로 [[소련]]의 구성국 [[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]]이 된다. 우크라이나 서부 [[갈리치아]] 지역은 1차대전 이후 독립한 폴란드가 차지했으며, 로마 가톨릭이 아닌 [[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]]을 믿는 우크라이나계에 대한 차별이 지속되었다. 또한 폴란드는 리투아니아를 기습하여 [[빌뉴스]]를 점령하였고, 리투아니아는 카우나스로 천도하고 빌뉴스를 미수복영토로 선언하였다. 이러한 연유로 리투아니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은 반러 감정 외에도 반폴란드 감정도 같이 공유하게 되었다. 이후 [[독소전쟁]]이 발발하면서 리투아니아는 [[나치 독일|독일]]에 잠시 점령당했다가 소련이 리투아니아의 나치 독일군을 몰아내고 이 지역을 그대로 소련의 구성국 [[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]]으로 삼는다. 우크라이나 역시 나치 독일군의 침략을 받았는데, 나치 독일군의 약탈과 학살은 우크라이나에서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했었다. 이후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소련에서 러시아인/우크라이나인들을 리투아니아에 일부 정착시키는 과정이 1989년에는 44,789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거주하였다 한다.[* 2차대전 전후 독일인 인구를 대거 추방하여 인구가 감소했던 라트비아, 에스토니아의 경우와 다르게 리투아니아의 경우 독일계 인구가 적어서 전후 독일인 추방으로 인한 인구 감소가 적은 편이었다.~~[[칼리닌그라드]] 빼고~~] 이후 1991년 [[소련 해체]]가 이루어 지면서 두 나라 모두 독립국의 지휘를 얻게 된다. 리투아니아와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이후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던 리투아니아인 및 리투아니아에 거주하던 우크라이나인 대부분은 본국으로 귀환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